치선리 산성터
소개의성읍 치선1리 뒷산에 위치한 이 성의 축성연대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데 해발고도 230미터에 비해서 비교적 조망이 좋으며, 산성의 형태는 산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에 축조된 산정식 토석혼축성(山頂式 土石混築城)이다.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뻗은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평평하게 삭토(削土)한 건물지가 있고, 서북벽의 모서리에는 약간 높은 석대(石台)의 망대(望臺)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북쪽 일부에는 봉수대(烽燧臺)의 유구(遺構)가 있는데 후대에 와서 개축한 듯하다. 성벽은 경사가 급한 서쪽에 높이 1-2미터, 성벽 너비는 1.2미터 정도의 석심토축(石心土築)으로 약간씩 축조하였으며, 그 이외의 북동남벽의 높이는 약 3 - 6미터의 규모로 내탁법(內托法)을 사용하여 축조했다.성곽을 둘러싼 내부의 회곽로(廻郭路)는 너비가 7-10미터 내외이다. 군데군데 망루(望樓로) 추정되는 곳에는 약 20미터의 너비로 확장되어 있다. 동벽에는 성문지(城門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붕괴되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저경(底經) 1.5미터, 높이 6미터의 상면이 고분모양의 평평한 돌무더기가 축조되어 있는데, 이곳은 가장 높고 사방의 전망이 좋은 곳으로 미루어 볼 때, 전망대로 추정된다.성내에서는 우물이 발견되지 아니 하였는데 아마 오랜 세월 속에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700미터이며 현재 성의 정상부와 내부 회곽로(廻郭路)에는 민묘가 수십기 조성되어 있어, 성의 유구(遺構)를 많이 훼손하고 있다.정보내용소개의성읍 치선1리 뒷산에 위치한 이 성의 축성연대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데 해발고도 230미터에 비해서 비교적 조망이 좋으며, 산성의 형태는 산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에 축조된 산정식 토석혼축성(山頂式 土石混築城)이다.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뻗은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평평하게 삭토(削土)한 건물지가 있고, 서북벽의 모서리에는 약간 높은 석대(石台)의 망대(望臺)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북쪽 일부에는 봉수대(烽燧臺)의 유구(遺構)가 있는데 후대에 와서 개축한 듯하다. 성벽은 경사가 급한 서쪽에 높이 1-2미터, 성벽 너비는 1.2미터 정도의 석심토축(石心土築)으로 약간씩 축조하였으며, 그 이외의 북동남벽의 높이는 약 3 - 6미터의 규모로 내탁법(內托法)을 사용하여 축조했다.성곽을 둘러싼 내부의 회곽로(廻郭路)는 너비가 7-10미터 내외이다. 군데군데 망루(望樓로) 추정되는 곳에는 약 20미터의 너비로 확장되어 있다. 동벽에는 성문지(城門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붕괴되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저경(底經) 1.5미터, 높이 6미터의 상면이 고분모양의 평평한 돌무더기가 축조되어 있는데, 이곳은 가장 높고 사방의 전망이 좋은 곳으로 미루어 볼 때, 전망대로 추정된다.성내에서는 우물이 발견되지 아니 하였는데 아마 오랜 세월 속에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700미터이며 현재 성의 정상부와 내부 회곽로(廻郭路)에는 민묘가 수십기 조성되어 있어, 성의 유구(遺構)를 많이 훼손하고 있다.정보내용소개의성읍 치선1리 뒷산에 위치한 이 성의 축성연대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데 해발고도 230미터에 비해서 비교적 조망이 좋으며, 산성의 형태는 산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에 축조된 산정식 토석혼축성(山頂式 土石混築城)이다.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뻗은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평평하게 삭토(削土)한 건물지가 있고, 서북벽의 모서리에는 약간 높은 석대(石台)의 망대(望臺)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북쪽 일부에는 봉수대(烽燧臺)의 유구(遺構)가 있는데 후대에 와서 개축한 듯하다. 성벽은 경사가 급한 서쪽에 높이 1-2미터, 성벽 너비는 1.2미터 정도의 석심토축(石心土築)으로 약간씩 축조하였으며, 그 이외의 북동남벽의 높이는 약 3 - 6미터의 규모로 내탁법(內托法)을 사용하여 축조했다.성곽을 둘러싼 내부의 회곽로(廻郭路)는 너비가 7-10미터 내외이다. 군데군데 망루(望樓로) 추정되는 곳에는 약 20미터의 너비로 확장되어 있다. 동벽에는 성문지(城門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붕괴되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저경(底經) 1.5미터, 높이 6미터의 상면이 고분모양의 평평한 돌무더기가 축조되어 있는데, 이곳은 가장 높고 사방의 전망이 좋은 곳으로 미루어 볼 때, 전망대로 추정된다.성내에서는 우물이 발견되지 아니 하였는데 아마 오랜 세월 속에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700미터이며 현재 성의 정상부와 내부 회곽로(廻郭路)에는 민묘가 수십기 조성되어 있어, 성의 유구(遺構)를 많이 훼손하고 있다.정보내용소개의성읍 치선1리 뒷산에 위치한 이 성의 축성연대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데 해발고도 230미터에 비해서 비교적 조망이 좋으며, 산성의 형태는 산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에 축조된 산정식 토석혼축성(山頂式 土石混築城)이다.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뻗은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평평하게 삭토(削土)한 건물지가 있고, 서북벽의 모서리에는 약간 높은 석대(石台)의 망대(望臺)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북쪽 일부에는 봉수대(烽燧臺)의 유구(遺構)가 있는데 후대에 와서 개축한 듯하다. 성벽은 경사가 급한 서쪽에 높이 1-2미터, 성벽 너비는 1.2미터 정도의 석심토축(石心土築)으로 약간씩 축조하였으며, 그 이외의 북동남벽의 높이는 약 3 - 6미터의 규모로 내탁법(內托法)을 사용하여 축조했다.성곽을 둘러싼 내부의 회곽로(廻郭路)는 너비가 7-10미터 내외이다. 군데군데 망루(望樓로) 추정되는 곳에는 약 20미터의 너비로 확장되어 있다. 동벽에는 성문지(城門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붕괴되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저경(底經) 1.5미터, 높이 6미터의 상면이 고분모양의 평평한 돌무더기가 축조되어 있는데, 이곳은 가장 높고 사방의 전망이 좋은 곳으로 미루어 볼 때, 전망대로 추정된다.성내에서는 우물이 발견되지 아니 하였는데 아마 오랜 세월 속에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700미터이며 현재 성의 정상부와 내부 회곽로(廻郭路)에는 민묘가 수십기 조성되어 있어, 성의 유구(遺構)를 많이 훼손하고 있다.정보내용소개의성읍 치선1리 뒷산에 위치한 이 성의 축성연대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데 해발고도 230미터에 비해서 비교적 조망이 좋으며, 산성의 형태는 산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에 축조된 산정식 토석혼축성(山頂式 土石混築城)이다.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뻗은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평평하게 삭토(削土)한 건물지가 있고, 서북벽의 모서리에는 약간 높은 석대(石台)의 망대(望臺)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북쪽 일부에는 봉수대(烽燧臺)의 유구(遺構)가 있는데 후대에 와서 개축한 듯하다. 성벽은 경사가 급한 서쪽에 높이 1-2미터, 성벽 너비는 1.2미터 정도의 석심토축(石心土築)으로 약간씩 축조하였으며, 그 이외의 북동남벽의 높이는 약 3 - 6미터의 규모로 내탁법(內托法)을 사용하여 축조했다.성곽을 둘러싼 내부의 회곽로(廻郭路)는 너비가 7-10미터 내외이다. 군데군데 망루(望樓로) 추정되는 곳에는 약 20미터의 너비로 확장되어 있다. 동벽에는 성문지(城門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붕괴되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저경(底經) 1.5미터, 높이 6미터의 상면이 고분모양의 평평한 돌무더기가 축조되어 있는데, 이곳은 가장 높고 사방의 전망이 좋은 곳으로 미루어 볼 때, 전망대로 추정된다.성내에서는 우물이 발견되지 아니 하였는데 아마 오랜 세월 속에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700미터이며 현재 성의 정상부와 내부 회곽로(廻郭路)에는 민묘가 수십기 조성되어 있어, 성의 유구(遺構)를 많이 훼손하고 있다.정보내용소개의성읍 치선1리 뒷산에 위치한 이 성의 축성연대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데 해발고도 230미터에 비해서 비교적 조망이 좋으며, 산성의 형태는 산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에 축조된 산정식 토석혼축성(山頂式 土石混築城)이다.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뻗은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평평하게 삭토(削土)한 건물지가 있고, 서북벽의 모서리에는 약간 높은 석대(石台)의 망대(望臺)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북쪽 일부에는 봉수대(烽燧臺)의 유구(遺構)가 있는데 후대에 와서 개축한 듯하다. 성벽은 경사가 급한 서쪽에 높이 1-2미터, 성벽 너비는 1.2미터 정도의 석심토축(石心土築)으로 약간씩 축조하였으며, 그 이외의 북동남벽의 높이는 약 3 - 6미터의 규모로 내탁법(內托法)을 사용하여 축조했다.성곽을 둘러싼 내부의 회곽로(廻郭路)는 너비가 7-10미터 내외이다. 군데군데 망루(望樓로) 추정되는 곳에는 약 20미터의 너비로 확장되어 있다. 동벽에는 성문지(城門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붕괴되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저경(底經) 1.5미터, 높이 6미터의 상면이 고분모양의 평평한 돌무더기가 축조되어 있는데, 이곳은 가장 높고 사방의 전망이 좋은 곳으로 미루어 볼 때, 전망대로 추정된다.성내에서는 우물이 발견되지 아니 하였는데 아마 오랜 세월 속에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700미터이며 현재 성의 정상부와 내부 회곽로(廻郭路)에는 민묘가 수십기 조성되어 있어, 성의 유구(遺構)를 많이 훼손하고 있다.정보내용소개의성읍 치선1리 뒷산에 위치한 이 성의 축성연대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데 해발고도 230미터에 비해서 비교적 조망이 좋으며, 산성의 형태는 산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에 축조된 산정식 토석혼축성(山頂式 土石混築城)이다.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뻗은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평평하게 삭토(削土)한 건물지가 있고, 서북벽의 모서리에는 약간 높은 석대(石台)의 망대(望臺)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북쪽 일부에는 봉수대(烽燧臺)의 유구(遺構)가 있는데 후대에 와서 개축한 듯하다. 성벽은 경사가 급한 서쪽에 높이 1-2미터, 성벽 너비는 1.2미터 정도의 석심토축(石心土築)으로 약간씩 축조하였으며, 그 이외의 북동남벽의 높이는 약 3 - 6미터의 규모로 내탁법(內托法)을 사용하여 축조했다.성곽을 둘러싼 내부의 회곽로(廻郭路)는 너비가 7-10미터 내외이다. 군데군데 망루(望樓로) 추정되는 곳에는 약 20미터의 너비로 확장되어 있다. 동벽에는 성문지(城門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붕괴되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저경(底經) 1.5미터, 높이 6미터의 상면이 고분모양의 평평한 돌무더기가 축조되어 있는데, 이곳은 가장 높고 사방의 전망이 좋은 곳으로 미루어 볼 때, 전망대로 추정된다.성내에서는 우물이 발견되지 아니 하였는데 아마 오랜 세월 속에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700미터이며 현재 성의 정상부와 내부 회곽로(廻郭路)에는 민묘가 수십기 조성되어 있어, 성의 유구(遺構)를 많이 훼손하고 있다.정보내용
오경우 2014-02-28